칼럼
내용
최면(心中心)에 대한 인식(認識)
1. 원시문화(原始文化) 에서부터 샤머니즘 신앙사상(信仰思想)에 이르기까지 질병 치료목적의 주술(呪術) 등을 포함한 행위(行爲)들을 객관적(客觀的) 입장에서 분석하면 집중(集中)에 의한 몰입(沒入) 상태에 이르러 마음의 중심(心 中心)자리에 도달해 있음을 발견 할 수 있게 된다.
최면의 상태도 이와 아주 유사(類似)한 상태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시술자(施術者) 또는 행위자(行爲者)들은 각기 자기의 신앙주체(信仰主體)의 이름으로 결부(結付)시키기도 한다. 그 신앙이나 시술행위자(施術行爲者)의 지지자 또는 종복자(從僕者) 이거나 그 편의 사람인경우는 이를 거부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이나 부정(不正) 하는 측 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부정적(否定的) 일 수 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정신세계(精神世界) 속에 귀신 따위나 또 다른 무언가가 들어와서 어떤 힘으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강박(强拍)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면 소름 끼치는 일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면(心中心)이란 신앙사상이나 샤머니즘의 행위(行爲)와는 차원적(次元的) 논리(論理)를 전혀 달리하고 있다. 최면을 발전시켜 왔거나 연구해온 학자들 중에도 신(神)의 이름이나 샤머니즘을 주창(主唱)하거나 결부(結付) 시켜 주장하는 학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의학자 F. A. Mesmer (1734-1815)은 인간의 세포(細胞)가 자석(磁石)과도 연관(聯關)이 있다고 하여 ‘윈’ 에서 동물자기(動物磁氣)설 을 발표(發表)하고 그 당시에는 ‘동물자기술’(動物磁氣術) 이라고 했다.
1834년 ‘신경 최면학’ (최면을 기록하고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 을 펴내고 잠 이란 어원인 Hypnos에서 유래하여 Hypnosis ‘최면’ 이라고 명칭을 바꾼 J. 브레이드 도 의학자로서 영국왕실의 의사(醫師)였다.
1864년 낭시에서 직접암시(直接暗示)를 개발하여 피 최면자를 트랜스상태에서 타인 암시로 유도(誘導)하는 근대적(近代的) 최면기법의 창시적(創始的) 인물인 “리에보”에게 당시 낭시대학의 외과의사인 베른하임도 최면을 사사한 후 “리에보“와 함께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여 그 명성(名聲)이 자자했고
1884년부터 2년여에 걸 처 출판된 베른하임의 “암시와 치료적 응용”은 그 시대의 수많은 의학자들이 최면을 공부하기 위하여 낭시로 몰려들어 “낭시 학파(學派)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파리에 “샤르코” 교수가 Mesmer의 동물자기 설을 근거(根據)로 한 “샤르페트리엘 학파”로 “낭시학파”에 대항 하였으나 낭시학파의 ‘암시’ 설에 의해 와해되었다. 정신분석학(精神分析學)을 완성한 “프로이드”도 당시 샤르코와 베른하임의 최면학(催眠學)에 입문(入聞)하였으나 최면으로는 명성(名聲)을 얻지 못하고 자신의 정신분석학 (精神分析學)에만 그 족적(足跡)을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1933년 “최면과 피 암시성”을 출판한 당시 예일대학의 C. L. 힐 교수나 그 이외 많은 최면연구가 들도 대부분 의학자들 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신앙 사상적(思想的) 또는 샤머니즘의 범주(帆柱)에서 최면이 연구개발 되어 온 것은 전무(全無)하거나 연구물(硏究物)로 전승(傳承)되어 온 것도 없었다.
이미 세계열강(世界列强)들에서도 의학의 한 부분(部分)을 차지하는 중요한 학술로써 과학적(科學的)인 연구 분야로 인정 되어가고 있으므로 최면을 두려워 하거나 부정적(否定的)으로 치부할 문제는 아니 라고 본다.
1. 원시문화(原始文化) 에서부터 샤머니즘 신앙사상(信仰思想)에 이르기까지 질병 치료목적의 주술(呪術) 등을 포함한 행위(行爲)들을 객관적(客觀的) 입장에서 분석하면 집중(集中)에 의한 몰입(沒入) 상태에 이르러 마음의 중심(心 中心)자리에 도달해 있음을 발견 할 수 있게 된다.
최면의 상태도 이와 아주 유사(類似)한 상태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시술자(施術者) 또는 행위자(行爲者)들은 각기 자기의 신앙주체(信仰主體)의 이름으로 결부(結付)시키기도 한다. 그 신앙이나 시술행위자(施術行爲者)의 지지자 또는 종복자(從僕者) 이거나 그 편의 사람인경우는 이를 거부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이나 부정(不正) 하는 측 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부정적(否定的) 일 수 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정신세계(精神世界) 속에 귀신 따위나 또 다른 무언가가 들어와서 어떤 힘으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강박(强拍)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면 소름 끼치는 일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면(心中心)이란 신앙사상이나 샤머니즘의 행위(行爲)와는 차원적(次元的) 논리(論理)를 전혀 달리하고 있다. 최면을 발전시켜 왔거나 연구해온 학자들 중에도 신(神)의 이름이나 샤머니즘을 주창(主唱)하거나 결부(結付) 시켜 주장하는 학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의학자 F. A. Mesmer (1734-1815)은 인간의 세포(細胞)가 자석(磁石)과도 연관(聯關)이 있다고 하여 ‘윈’ 에서 동물자기(動物磁氣)설 을 발표(發表)하고 그 당시에는 ‘동물자기술’(動物磁氣術) 이라고 했다.
1834년 ‘신경 최면학’ (최면을 기록하고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 을 펴내고 잠 이란 어원인 Hypnos에서 유래하여 Hypnosis ‘최면’ 이라고 명칭을 바꾼 J. 브레이드 도 의학자로서 영국왕실의 의사(醫師)였다.
1864년 낭시에서 직접암시(直接暗示)를 개발하여 피 최면자를 트랜스상태에서 타인 암시로 유도(誘導)하는 근대적(近代的) 최면기법의 창시적(創始的) 인물인 “리에보”에게 당시 낭시대학의 외과의사인 베른하임도 최면을 사사한 후 “리에보“와 함께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여 그 명성(名聲)이 자자했고
1884년부터 2년여에 걸 처 출판된 베른하임의 “암시와 치료적 응용”은 그 시대의 수많은 의학자들이 최면을 공부하기 위하여 낭시로 몰려들어 “낭시 학파(學派)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파리에 “샤르코” 교수가 Mesmer의 동물자기 설을 근거(根據)로 한 “샤르페트리엘 학파”로 “낭시학파”에 대항 하였으나 낭시학파의 ‘암시’ 설에 의해 와해되었다. 정신분석학(精神分析學)을 완성한 “프로이드”도 당시 샤르코와 베른하임의 최면학(催眠學)에 입문(入聞)하였으나 최면으로는 명성(名聲)을 얻지 못하고 자신의 정신분석학 (精神分析學)에만 그 족적(足跡)을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1933년 “최면과 피 암시성”을 출판한 당시 예일대학의 C. L. 힐 교수나 그 이외 많은 최면연구가 들도 대부분 의학자들 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신앙 사상적(思想的) 또는 샤머니즘의 범주(帆柱)에서 최면이 연구개발 되어 온 것은 전무(全無)하거나 연구물(硏究物)로 전승(傳承)되어 온 것도 없었다.
이미 세계열강(世界列强)들에서도 의학의 한 부분(部分)을 차지하는 중요한 학술로써 과학적(科學的)인 연구 분야로 인정 되어가고 있으므로 최면을 두려워 하거나 부정적(否定的)으로 치부할 문제는 아니 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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